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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 [선덕여왕릉]

살아가는 이야기/여행하기

by 꿈을 낚는사람 2023. 3. 2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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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릉

은 숲이 우거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은 646년에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봉토 밑에 둘레돌을 쌓은 원형의 토분이 있습니다. 둘레돌은 잡석을 비스듬히 2단을 쌓고 그 밖으로 드문드문 둘레돌의 높이와 비슷한 대석을 기대어 놓았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죽는날을 미리 예언하고 도리천에 장사지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 말이 무슨뜻인지를 알아듣지 못했다고 하는데, 낭산이 바로 그곳이라고 일단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10여년 후인 문무왕 때 능 밑에 사천왕사를 지으니 불경에서 말한바 불경에서 말한 바 사천왕 위가 도리천을 가르침을 실증한 것이되어 비로소 모두가 깨달았다고 합니다. 

현재는 사적(1969년)으로 지정었습니다. 지정면적은 1968년 사적으로 지정된 경주 낭산 일월의 전체 면적 82만 7,848㎡ 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덤의 지름은 23.6m 높이는 6.8m 라고 합니다. 

 

#선덕여왕 은 누구인가? 사실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랑 너무 오버랩된다^^

제27대 국왕이며 한국사 최초의 여왕입니다. 연호는 인평, 골품은 성골이며,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 태어난 장녀이다. 

진덕여왕, 진성여왕, 선덕여왕은 신라 3대 여왕이다. 

삼국유사에는 음갈문왕 , 화랑세기에는 김용춘, 을제 3명의 남자가 선덕여왕의 남편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화랑세기는 현재 역사적 가치로인정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라의 경우에는 아들이 없어거나 딸이 아닌 사위가 왕에 올랐다고 하는데, 탈해 이사금, 내해 이사금, 미추 이사금이 그러하다고 합니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선덕여왕이 왕으로 올랐는데, 핏줄을 중시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칠숙,석품의 난이 있었는데 진평왕의 대항한 반란, 선덕여왕의 즉위하는 것을 반대한 반란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선덕여왕이 지목된 상태에서 일어난 반란이라고 합니다.)

재위 15년에는 비담이 염종과 함께 비담의 난을 일으켰다. 

 

나당 동맹( 신라와 당의 동맹)을 맺었으며 이것은 훗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토대가 되었습니다. 

선덕여왕때 만들어진 것중에는 첨성대, 분황사(재위 3년)석탑, 마곡사(9년), 월정사 ,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있다.

선덕여왕과 함께한 인재들 "김춘추" "김유신" 

642년 백제의공격으로 선덕여왕은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습다. 

하지만 죽령이북을 고구려에게 달라고 연개소문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관계는 끝이 났습니다. 

비담의 난을 진압한 김유신은 덕분에 귀족파는 무너지고 김유신과 김춘추 중심인 국왕파가 주도권을 잡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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