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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 [헌안왕릉] [문성왕릉][진지왕릉][진흥왕릉][무열왕릉][김인문묘][김양묘]

살아가는 이야기/여행하기

by 꿈을 낚는사람 2023. 5. 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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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당 뒷편에 헌안왕릉 / 문성왕릉 / 진지왕릉 / 진흥왕릉이 이 있습니다. 

 

경주여행하기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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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안왕릉

흙을 둥굴게 쌓아 올린 무덤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을 쌓았습니다. 내부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추정중입니다. 

헌안왕릉 옆에는 도봉서당을 만든 황정의 묘라고 합니다. 사적 제179호 입니다. 

헌안왕의 재위는 857 - 861 이며, 제 47대 왕입니다. 신무왕의 동생으로 조카인 문성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불교를 통하여 지방 세력의 불만을 완화하려는 정책을 펼쳤고, 조서를 내려 제방을 수리하고 농사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재위 5년에 뭄에 병으로 죽게되면서 공작지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공작지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승정원일기를 보면 정조 16년 경상도관찰사 보고문에 의하면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이 같은 언덕 위에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헌안왕릉 바로 옆에는 문성왕릉이 있습니다.

문성왕릉

제46대왕이며, 사적 제518호 입니다. 

재위기간은 839 - 857 입니다. 신무왕의 태자로 왕위에 올랐으며, 귀족 세력의 도전과 연이어 발생한 난으로 왕권 유지에 큰 어려움을 격었던 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병이 위증해지자 작은아버지에게 왕위를 잇게 하라는 유연을 남기고 공작지에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문성왕릉 뒷편에는 진지왕릉과 진흥왕릉이 있습니다. 

진지왕릉

제 25대왕이며, 사적 제517호 입니다. 

재위기간은 576 - 579년 입니다. 그의 이름은 사륜,금륜이라 합니다. 진흥왕의 둘째아들이며, 형 동륜이 먼저죽자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즉위 후 거칠부에게 국정을 맡겼고, 진흥왕의 뜻을 받들어 내리서성으로 쌓았습니다. 백제군 격퇴, 진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맺는 등 치적을 쌓았으나 재위 4년 만에 화백회의에서 폐위가 되었습니다. 영경사 주변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삼층석탑 소재지를 영경사 터로 보고 있기에  이 무덤을 진지왕릉으로 정하였습니다. 

진지왕릉 뒷편에 진흥왕릉이 있습니다. 

진흥왕릉

제 24대 왕릉입니다, 재위기간은 540 - 576 입니다. 진흥왕은 많은 사람들이 알듯이 신라 역사상 최대, 최고의 청년 정복군주로 알려져있습니다. 백제의 근초고왕과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더불어 대표적인 정복군주입니다. 

삼국통일의 기틀을 만든 왕이며, 562년 대가야 병합 등을 하였으며, 북한산 순수비(568/국보 3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561/순수비가 아닌이유는 순수관경이라는 이름이 없기때문이다),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568 / 함주군 하기천면 진흥리),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568/함경남도 이원군) 가 있습니다. 

차로 2분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왕릉의 뒷편에는 서악동 고분군이 있고, 앞에는 둘째아들 김인문의 묘와 후손의 묘가 있습니다. 

 

 

무열왕릉

무열왕릉은 신라의 왕들중에 제대로 밝힌 몇안되는 7개의 능 중 하나입니다. 무열왕릉 앞에 태종무열대좡지비 라고 쓰여 있기에 능의 주인이 무열왕릉 이라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입장료
어른 2,000원 / 군인, 청소년 1,000원 / 어린이 500원
3-10월 오전 9시 - 오후 6시 / 11 -2월 오전 9시 - 오후 5시 입니다. 

제 29대 왕이며, 사적 제20호 입니다. 와의 이름은 김춘추 입니다. 진지왕의 손자이며, 진덕여왕의 뒤르 ㄹ이어 진골로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이 되기전부터 활발한 외교활동과 내정 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김유신과 함께 삼국 통일을 기반을 닦으며 왕권을 강화하였고, 660년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정벌한 다음해에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영경사 북쪽에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

김양의 묘

태종무열왕의 9대손이며, 장보고와 함께 민애왕을 몰아내고 신무왕을 왕으로 추대했으며, 신무왕이 일찍 죽자 문성왕을 다시 모셨습니다. 

50세 나이에 죽자 문성왕이 애통해하며, 김양에게 제1관등인 각간을 추증했습니다.

김인문의 묘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무덤입니다. 신라의 외교가이자 삼국 통일의 숨은 주역입니다. 당나라에서 관직을 지내다가 죽자 당 고종은 그의 시신을 호송하여 신라로 보냈으며, 효소앙은 그에게 태대각간의 벼슬을 내리고 서악에 장례를 치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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