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은 조시대 유학자인 한훤당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만들어진 서원이다.
한국의 서원은 9개있다. 돈암서원(논산/김장생) , 무성서원(정읍/최치원), 필암서원(장성,김인후),남계서원(함양/정여창), 도동서원(달성/김광필), 옥산서원(경주/이언적), 병산서원(안동/류성룡),도산서원(안동/이황),소수서원(영주/안향) 이렇게 총 9개의 서원이 있다.
도동서원 입장료가 없으며,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다.
도동서원은 조선 초기인 1568년 쌍계서원이라는 이름으로 한훤당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창건하였다.그리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4년에 지금의 위치에 재창건되었고, 1607년 '도동'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원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678년에 정구(김굉필의 외증손자이며 17세기 예약연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를 추가 배향하였고,2007년 사적 제488호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 7월 6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입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400년된 은행나무이다.
도동서원을 올라기전에 좌편에는 비각이 있으며, 우편에 있는 건물은 유물전시관이다. 유물전시관은 장판각에 보관하던 전적류와 유물들이 있는데 현재는 모조품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도둑이 든적있어서 문을 잠겨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김굉필의 신도비각의 경우에는 문이 잠겨 있어서 안쪽을 볼수는 없습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수월루를 지나서 돌계단을 따라올라가면 좁은 환주문이 나오고, 눈에 보이는 건물이 중정당이다. 중정당의 양옆에 보이는 건물들이 왼편에 거인재, 거의재가 있으며, 이 두건물은 마주보고 있다.
현재 거인재는(2022.9.21) 현재 보수공사중에 있다. 중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 및 학문의 강론장소로 사용하고있으며,'중정'은 음과 양이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중용으 상태를 말한다고 합니다. 사액서원인 도동서원 현판은 만력 35년 2월 선사라는 글자들이 왕이 내린 사액임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현재는 학생들의 체험학습등으로 사용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중정당에 들어왔을때 강의를 하고 있어서 조심히 찍고 뒷편으로 이동했습니다.(안을 보고싶었지만, 아쉽습니다. 도동서원규목(설립취지,내력,운영방안)이 걸려있고, 백록동규와 유생들이 지켜야하는 규범과 도리에 관한 목판이 걸려있다고 합니다.
거인재와 거의재는 유생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중정당의 왼편에는 장판각이 있고, 오른편에는 전사청으로 연결되는 사주문이 있다. 장판각은 판목이나 전적류를 보관하는 곳이며, 통풍이 잘될 수 있도록 신경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당의 뒷편에는 가파른 계단이 있으며, 계단을 올라가면 내삼문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내삼문은 잠겨있어서 안쪽을 볼수없습니다. 사당안에는 김굉필,정구의 위패가 있으며, 김굉필의 도학정신을 그린 벽화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사때에 이곳을 개방한다고 합니다. 사당 왼편 협문을 지나서 들어가면 증반소가 있습니다. 증반소란 더운 음식을 익히거나 데우는 장소를 말합니다. 서원의 후면 산자락으로 올라가면 사당의 후면과 증반소의 모습을 볼수있다고 합니다. 담장 넘어라서 자세히는 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중정당 오른편 사주문을 지나면 ㄷ자로 보이는 전사청이 있습니다. 전사정은 전사청 아래로는 곡간채와 문간채가 있습니다. 전사청은 문묘나 향교 등에서 제향을 준비하는 곳이며, 제수용품을 마련하던 장소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숙식을 하였고, 서원을 관리하는 고직사가 살던 공간이기도 한다.
곳간채는 창고로 사용되었고, 문간채는 예전에 외양간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 공사주이라서 개인적으로는 공사가 끝나고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 그때는 공사로인해서 가려진 곳을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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