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친해지기>
열왕기상은 ‘왕국 분열 기후, 역대 왕들의 치세에 관한 이야기’의 의미를 한다.
◈ 그럼, 열왕기상의 내용을 정리 한다면,
기록연대 :정확한 연대는 알 수없음 기자 : 정확히 알수 없음 다만 몇 사람의 공동저작일 것으로 추정 종류 : 역사서, 여러왕들의 연대기 핵심 단어 : “지혜”,“분열” 기록 목적 : 이스라엘 과 유다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삶을 대조 핵심 내용 : 다윗 이후,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에 관한 기록. 특히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롭고 부유했던 솔로몬 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
◈ 열왕기상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을까?
1장 1절 ~ 2장 46절 : 아도니야야의 반역이 있었지만 다윗의 유지를 받들어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하다.
3장 1절 ~ 4장 34절 : 솔로몬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백성을 바르게 재판하고 이스라엘의 통치 체계를 확립하다.
5장 1절 ~ 8장 66절 : 솔로몬이 하나님 예배처소인 성전을 먼저 건축하고 자신의 궁궐을 나중에 건축하다.
9장 1절 ~ 11장 43절 : 솔로몬이 이방결혼과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질책을 받다.
12장 1절 ~ 16장 34절 : 솔로몬의 범죄의 여파로 남북 왕조로 분열되고 영적 풍조가 혼란에 빠지다.
17장 1절 ~ 22장 53절 : 엘리야 선지자의 사역을 통해 패역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표준을 선포하여 회개와 회복의 기회를 주다.
◈ 열왕기상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을까?
인물로 보는 성경이야기
솔로몬(하나님의 축복을 져버린 왕)
이스라엘의 3대왕(B.C 973 ~932), 선지자 나단으로부터 사적인 이름 ‘여디디야’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윗왕의 열 번째 아들이며 밧세바의 두 번째 아들이다.솔로몬은 ‘화평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고, 박학한 학자(왕상4:29 ~ 34)로 구약의 지혜문학의 대부분을 쓰고 그 외에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악으로 갚았고, 백성을 은혜를 악으로 갚았다. 그리고 백성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많은 이방 여인을 통하여 이방신을 좇았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국 분열을 초래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다윗이 사망할 때 이스라엘은 몇차례의 내란에도 불구하고 통일 국가를 유지하였고, 다윗의 인격적 힘과 가지가 이스라엘 통일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근동 여타 민족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이스라엘은 최고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최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솔로몬은 훌륭한 교육(나단 선지자)을 받았고 왕의 고귀한 영광과 동시에 반란의 혼란을 목도 하였다. 솔로몬은 명백한 법정 추정 왕위 상속인은 아니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장자 왕위 계승권이 확립되지 않았기에, 다윗이 뒤늦게 솔로몬을 차기 왕으로 공지하였다. 20세쯤의 나이에 기브온에서 등극하였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고,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축복과 더불어 통치를 시작하였다. 즉위 제 4년 2월 성전 건축을 착수하여 7년만인 제 11년 8월에 준공하였다. (왕상 6:38) 그의 사업은 부왕 다윗이 착수한 사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공고히 된 권력으로서 주위의 제 민족을 제압하였다.(왕상 9:20,21) 외교,무역에 주력하였고, 외국 무역에 착념해 홍해의 에시온게벨의 조선소를 둠(왕상 9:26~28) 주변 국가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왕상 7:1~12) 성전 건축에 이어 13년간 왕궁을 건축하여(왕상 7:1~12)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하였다.(왕상 10:14~25)이를 거의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데 쓰였다. 하지만 솔로몬은 후비 700, 빈장 300 도합 천명의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였다. 그것이 그가 타락하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후궁들로 그들의 이방신을 섬기게 하고 신전을 세우게 되었다.(왕상 11:7,8) 즉위 24년에 하나님께서 그의 꿈에 다시 나타났으며,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을 따르면 그의 혈통에서 왕위에 오를 자가 끊이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다.
하지만 솔로몬의 말년에는 계층간의 차별과 불평등이 야기 되었고, 그가 거느린 처첩들이 이방 종교를 전파하여 국가에 큰 장애를 일으켰다.
그는 B.C 932년경 통치 40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왕상 11:41~43)
르호보암(왕국 분열의 장본인)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마지막 왕이며, 남유다의왕이며, 솔로몬과 암몬 여인 나아마의 아들, 마아가의 남편이며, 아비야의 아버지이다. 처,첩을 각각 18명,60명씩 두어 아들 28명, 딸 60명을 둔 왕이다. 르호보암은 ‘백성, 가문이 늘어나다’의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분열 왕국을 이루게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마지막 왕이며, 성읍 건설과 군대를 정비하였다. 백성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못하였고, 심약하하다. 그리고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우상 숭배를 한 인물이다.
르호보암의 생애는 이스라엘의 분열을 기준으로 양분할 수 있다.
41세에 솔로몬의 뒤를 이어 B.C 931년경에 왕위에 올라 세겜에서 여로보암을 만났고,(왕상 12:1~5)중세와 강제 노역에 대한 여로보암과 백성들의 건의를 결렬시켰다.(왕상 12:12~14) 여로보암과 10지파가 북이스라엘을 세웠고(왕상 12:20) 이러한 결과는 애초에 솔로몬의 잘못을 인하여 여로보암에게 예언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왕상 11:31) 역군의 감독 아도니람의 죽음과 더불어 북이스라엘을 침략하려는 계획을 포기하였다. (왕상 12:18~24)
그는 성읍을 건설하고, 북 이스라엘부터 레위 족속과 제사장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3년간 번영을 누렸다.(대하 11:5~17)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며 우상을 숭배하여 제위 5년에 애굽왕 시삭의 침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왕상 14:21~28/B.C 926년) 17년간의 통치 후 죽었다.(왕상 14:31/B.C 914)
아합(가장 사악했던 왕)
이스라엘의 6대왕 오므리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7대왕으로서 B.C 874년부터 22년간 통치하였다. 이세벨의 남편이며, 아합은 ‘백부’또는‘숙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의 7대왕이며, 전투에서 승리한 왕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며, 이방여인 이세벨과과 결혼했고, 우상숭배를 한 인물이며, 아내의 악을 허락하였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이전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타난 바가 없고 왕으로서의 행적만이 기록되었다.
그는 바알 숭배했으며(왕상 16: 31~33), 엘리야가 참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이스라엘 땅에 가뭄을 예언하였다. (왕상 17;1~7) 3년 뒤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과의 대결에서 엘리야가 번제물의 열납으로 참 하나님을 나타냈다.(왕상 18;17~46)
B.C 853년 두 차례에 걸쳐 전쟁을 했으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두 번다 이겼다. 아람 왕 벤하닷과 동맹을 맺고 그를 살려주었고, 이로 인해 선지자의 징계의 예언을 듣게 되었다.
이스르엘 사람 나붓의 포도원을 탐하나 얻지 못하였고,(왕상 21:1~4) 이세벨의 계략으로 나붓의 죽이고, 포도원을 강탈당하였다. 이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이세벨과 아합의 죽음을 예고 하였고(왕상 21:17~26) 회개함으로 재앙이 아들대로 미루었다.(왕상 21:27~29) 이 재앙은 요람 왕에게 임하였다.(왕하 9:24,25) 아람 왕의 길르앗 라못을 빼앗기 위해 유다왕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게 되었다.(왕상 22:1~4)아람과의 전쟁에서 대해 모든 선지자들이 거짓을 말하며 승리를 예언하였고,(왕상 22:5 ~ 12) 진실을 말하는 미가야 선지자를 옥에 가두었다.(왕상 22:13·33) 미가야와 엘리야의 예언대로 전사하여 그 피를 개들이 핥았다. (왕상 22; 34~38) 그 외에도 유다왕의 동맹을 우해 딸 아달랴를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에에게 주었고,(왕하 8:18), 이세벨을 위해 상아궁을 지었다.(왕상 22:39), 그의 아들 70명이 살해했다.(왕하 10:1~11)
이세벨(철저하게 사악했던 여인)
두로 왕 엣바알의 딸(왕상 16:31)이며, 두로의 바알 아스탈트 신당 여선지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이다. 이세벨은 ‘정숙한’의 의미이다.
그녀는 남편을 섬겼고(왕상 21: 7), 담대한 용기의 소유자(왕하 9:31)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합에게 악한 영향을 끼쳤으며, 공공연히 선한 자들을 박해했고, 악한 자들만 골라서 가까이 지냈다(왕상 18:17~19) 음행과 술수가 대단했고(왕하 9:22) 바알 숭배를 확립했으며, 국가를 타락 시켰고, 자신의 남편과 자식들을 파멸시킨인물이다.
B.C874년경 아합과 결혼(왕상 16:31)했으며, 이때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를 확립시켰고,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세웠다. 그리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몰살하려고 계획을 세웠고,(왕상 18:1~4)바알 선지자들을 우대하였다.(왕상 18:19)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승리하자 백성들이 바알의 제사장들을 모두 죽였는데, 이때 그녀는 직접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경고 하였다. (왕상 19:1,2) 이때 엘리야는 도망하였다.
아합이 나붓의 포도원을 탐냈고(왕상 21:1~4)그녀는 하나님과 왕에게 불경했다는 죄목을 뒤집어 나붓을 죽였다(왕상 21:8~10), 이때 이세벨의 비참한 최후가 예언되었다.(왕상 21:17~24)예후가 자신을 죽이려고 오는 것을 화장 까지 하고 맞이하였고(왕하 9:30,31) 그녀가 죽었을 때 벽은 피로 얼룩졌고, 굶주린 개떼가 그 시체를 먹었다.(왕하 9:33~37)
엘리야(불의 선지자)
북왕국 이스라엘 최대의 선지자. 길르앗의 디벳 사람이며(왕상 17:1) 이스라엘 7대왕 아합과 8대왕 아하시야 시대에 사역을 했다.
털이 많고 허리에 가죽띠를 하고 있으며,(왕하 1:8) 엘리사를 제자로 기름 부었고, 죽지 않고 승천을 한 인물이다.
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의미를 가졌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대적 앞에서 담대함을 가졌다. 적개심을 지닌 왕의 맹렬한 위협적 행동을 회피 하지 않고 있으며, 바알 선지자들의 반대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는다. 그리고 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믿음으로 인내했다(왕상 18:43)그리고 기도의 사람이다(신약성경에서 기도의 모본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그의 간절한 믿음의 기도는 많은 기적을 불러 일으킨다) 엘리야는 죽은 아이를 살릴 때 자신의 몸을 직접 사용하는 뜨거운 사랑의 소유자이다. 또한 그는 확고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다. 믿음으로 말하기를 “큰 비의 소리가 있다”고 했다(왕상 18: 41)그리고 여호와의 제단에 불이 내릴 것을 확신했다. (왕상 18:33~35) 엘리사의 소원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면서 보여준 겸손한 인물이며, 사무엘이 세운 선지 학교에서 계속 하였고, 선지 학교의 생도들은 공동생활을 하며(왕하 2: 5~4:38~44)물질을 헌납 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바알 숭배가 여호와 숭배를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을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엘리야는 이세벨이 죽이고자 했을 때 도망하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공포를 보여 주었다.
엘리야의 사역은 유일한 참신인 하나님의 실재와 권능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생애는 여호와와 바알 숭배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가뭄을 예언했다.(왕상 17:1) 아합왕이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 제단으로 말미암아 종교적, 도덕적 타락이 이야기되었다.이러한 타락에 대하여 가뭄의 형태로 내릴 하나님의 심판을 알렸다. 예언 후 그릴 시냇가에 몸을 숨겼고, 가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돌봐주셨다.(왕상 17:2~7) 그는 양식을 떨어지지 않게 했으며(왕상 17:8~16) 과부의 죽으 아들을 소생시겼다.(왕상 17: 17~24) 갈멜산에서 아합에게 도전하여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모아달라고 요구했으며, 참하나님이 누구인가를 가름하는 내기를 하게 되었다. 엘리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응답 하게 되었고, 바알 선지자들의 실패하였고 죽음을 맞이 하게되었다.
그리고 3년 반 동안의 가뭄이 그치고 비가 내렸다. (왕상 18:41~46) 그도 인간이기에 거짓 선지자의 죽음에 대한 이세벨의 복수를 피해 호렙산으로 도망쳤다.(왕상 19: 1 ~ 8)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나붓의 포도원을 빼앗고 그를 죽인 아합을 비난하였다.(왕상 21:1~27) 하나님을 멸시한 아하시야 왕의 죽음을 예언하였다.(왕하1장) 아하시야는 회개치 않고 2번에 걸쳐 그를 죽이려했으며, 그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불이 내려 멸절하였다.
엘리야는 엘리사와 헤어지려는 3번의 시도(왕하 2:1 1~6)하였고, 불말과 불수레에 싸여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였다.(왕하 2: 7~12) 에녹과 더불어 죽지 않고 승천한 구약의 두인물 중 하나이다.
여로보암(이스라엘을 죄로 물들인 왕)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이며, 솔로몬의 신복인 느밧의 아들이다. 그리고 모친은 스루아임이고 애굽 공부 아노와 결혼을 했으며, 22년간 통치를 하였다(B.C 931 ~ 910년). 여로보암은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의 의미를 가졌다.
그는 사람들의 주의력을 끄는 힘이 강하며,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목적을 위해 의의 길을 포기하였고, 하나님을 불신하였고, 여호와의 경고와 그분의 사자를 무시하였다. 그리고 백성들 속에 불순종의 정신을 심어주었다. 바아사와 시므리와 오므리로 하여금 왕을 대적하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후계자들에게 물려주었고, 우상 숭배의 길을 닦았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된 여로보암은 우상숭배를 부흥시킴으로써 죄악을 범했다.
솔로몬의 ‘밀로’ 건축과 예루살렘 성벽 수축공사때에 감독자로 발탁되었다. (왕상 9:15) 그리고 ‘요셉의 집(10지파)’에 대한 세금 징수 관리로 임명되었고,(왕상 11:28) 아히야는 자기의 옷을 찢어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될것을 예언하게 되었고,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하였다.(왕상 11:40) 그가 애굽으로 도망 하였고, 솔로몬이 죽자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단 즉위하여 더욱 무거운 과세를 부과하게 되었는데(왕상 12:1~14) 이때 북쪽 10지파가 르호보암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고(왕상 12:16~19), 북지파들은 공회를 통해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 하게 되었다. (왕상 12:20) 여로보암이 왕이 되고 나서 세겜과 브누엘을 건축하여 요새화하였으며, 후에 데르사로 수도를 옮겼다. 그리고 스마야의 예언으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오던 르호보암의 세력이 저지되었고(왕상 12:22~24) 르호보암과의 전쟁이 계속되었다. (왕상 14:30) 유다 왕 아비얌과의 전쟁에 휘말렸다(왕상 15:7/B.C 913) 애굽 왕 시삭이 쇠약해진 이스라엘과 유다의 제압하여 팔레스틴 지역을 장악하려고 침입하였다.(왕상 14:25)
금송아지를 숭배하였고(왕상 12:27~30), 많은 산당을 지어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사악한 제사장을 삼아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다.장막절의 날짜를 변경하였고(왕상 12:32,33)세속적인 이방인들의 축제를 예루살렘에 소개하였고, 한 무명의 예언자가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다.(왕상 13;4)
여로보암은 결국 아비얌 왕과의 전쟁에서 패하였다. (대하 13:1~19) 이때 벧엘과 다른 경계지 성읍을 모두 잃었고, 이 전쟁에서 패한 뒤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로보암은 병으로 인하여 바참하게 사망하게 되었다.
발췌 내용:
하루만에 꿰뚫는 성경관통
라이프 성경, 셀프 성경
아가페 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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