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흰피가 솟구치고 잘린 목은 소금강산까지 날라서 목이 떨어졌는데 법흥왕이 세운 절입니다.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가 불교를 공인했으므로 신라 불교의 시작점이자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8세기에 경덕왕이 백률사를 지나갈때 염불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땅을 파보니 큰 돌이 나와 4면에 불상을 새기고 굴불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1985년의 발굴조사 결과 이곳에서 동사라고 새겨진 기와가 고려시대 층위에서 발견되어, 한때 동사로 불렀습니다. 1183년(명종 13)에 중수가 있었음을'삼국유사'의 내용을 확인하면, 몽고의 침략이 있었던 13세기 중반에 폐사될 까지 굴석사로 불렸습니다. 1681년(숙종7) 중창되었며 18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다시 페사되었다고 합니다.
보물이며, 본존 높이 3.51m, 미륵보살상 높이 1.61m, 석가여래상 높이 1.36m, 동면약사여래상 높이 2.06m 이며,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큰석주의 4면에 조각된 불상으로, 서면에 아미타여래, 동면에 약사여래, 북면에 미륵보살, 남면에 석가여래의 상을 새겼습니다.
692년(효소왕1)에 국선이 된 부례랑은 693년 3월에 화랑의 무리와 함께 강릉으로 갔다가 말갈족에게 잡혔습니다. 다른이들은 도망쳤지만 안상만 홀로 그를 찾으러 갔고, 이소식을 듣은 효소왕은 놀랬고, 그때 구름이 천존고를 덮어서 창고를 조사하게되었는데, 현금과 신적 두 보물마저 사라진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에 부례랑의 부모가 백률사에서 기도를 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향나무로 만든 탁자위에 현금과 신적이있고 그 뒤에 부례랑과 안상이있다고 합니다. 어찌된일이지 물어보니 말갈족에 잡힌 부례랑이 말모이를 주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 스님와 가까와서 손에 현금과 신적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게 나를 따라오라 말을 했습니다. 그를 따라 해변에 가니 안상을 만났고, 스님은 신적을 둘로 쪼개어 부례랑과 안상에게 각각 타라고 이야기하고 눈깜짝하는 사이에 현금을 타고 백률사로 왔다는 이야기 입니다.
신라의 3가지보물과 괴상한풍경이 8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삼기팔괴라 하며, 그 중에 백률송순이 그에 해당합니다. 소나무에는 원래 순이 돋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률사에는 소나무 가지를 치고 나면 다시 새순이 돋아난다하여 백률송순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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