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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 [육신사]

살아가는 이야기/여행하기

by 꿈을 낚는사람 2022. 10. 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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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육신사를 방문했습니다. 

입구에 주차장 있습니다. 그리고 평일에는 체험학습하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육신기념관은 입구에 있습니다. 주차를 하고 조금만 올라가시면 있습니다. 잔디밭에 건물 하나가 보입니다. 

사육신기념관은 조선세조때 단종의 복위를 꿈꾸던 사육신 성상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의 업적을 기념하기위해서 만들어진 기념관입니다. 이곳에는 사육신 관련 역사자려와 현판과 교지 등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운데는 별운검에 대한 VR 있으며, 한쪽 방에는 XR 체험방이 있습니다. 제가 갔을때는 그 전에 체험학습온 팀이 있어서 충전중이라서 사용을 못했습니다. 

 * 참고로 평일낮 점심시간에는 문이 닫혔습니다. 혹여나 점심때 도착하시면 나가실때 봐도 될것 같습니다^^


#삼충각

위치는 사육신 기념관 뒷편에 있다. 

박팽년은 1755년 충신정려를 받았다. 둘째아들 박순(박팽년과 함께 죽음을 당함)과 박순의 유복자였던 박일산은 1831년 정려를 받았다. 3대에 걸쳐 정려를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은 높이 1.7cm, 폭 60cm, 두께 30cm 크기이다. 그리고 전면에는 순천박씨삼세정충기실비 라고 적혀있다. 비각은 정면 1칸 , 측면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높이는 4m이다. 이곳의 비문은 홍문관교리 박승현이 지었다. 

1832년 경상도관찰사 김양순이 사육신 사당을 참배한 후 비석을 세울 것을 명하여 1835년에 세워졌다.

 


두 갈래 길이 나옵니다. 육신사 가는길과 삼가헌 가는길입니다. 왼쪽으로 걸어올라가면 삼가헌이 나온다고 합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서 차로 이동했는데, 이쪽 방향이 아니라 큰도로 둘러갔습니다. 차량으로 4분 거리입니다. 


#충효당

충효당은 삼충각 뒷쪽에 있다. 큰길로 나와서 길을 걷다보면 바로 보인다.  현재 충효당은 보수공사중입니다. 

최근에 다닌곳(도동서원,삼가헌등)은 보수공사를 하는곳이 많은것보면 보수공사 하는 시기이인듯 하다.

1644년(인조 22년) 충정공 박팽년의 7대손 금산군수 숭고가 별당으로 건립하였다. 그후에 충효당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청년에게는 충과 효를 지도하고 예와 악을, 활쏘기,말몰기 등 실습시키며 부녀자에게는 법도를 가르쳤다고 한다. 

1955년에 이곳으로 옮겨져서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되었다고 한다.(누마루를 부설)


조금 더 올라가면 이렇게 두갈래로 나누어집니다. 

왼쪽은 박두을여사생가, 오른쪽은 육신사,도곡재 입니다. 


#박두을여사 생가

박두을은 고 이병철 회장의 부인입니다. 사육신의 한분인 박팽년 후손으로 태어나 21세에 이병철회장과 혼인하였다고 합니다. 안쪽에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여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유년시절에 관상을 본 한 스님이 "왕비가 아니면 거부의 아내가 될 것이다"라고 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안쪽으로 더 올라가면 정암한의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추모재를 찾지 못해서 포기하려다가 마을분 말씀으로는 정암한의원 주변에 #추모재가 있다고 했는데, 이곳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이 추모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육신기념관에 있는 그림이랑 비슷한것 같기도 하다. 

추모재는 박팽년의 칠대손이며 승정처사 도곡공 박정우의 자 복직랑 박승환을 추모하기 위해서 세워진 사당이라고 한다. 

이곳은 언제 만들어진 곳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붕은 부연 와즙에 퇴를 빼고 4칸에 좌우가 방이며 중간에 마루가 있다. 


#도곡재

이 건물은 1778년(정조 2년)에 대사성을 지낸 서정공 박문현이 지었던 곳으로 알려져있으며, 19세기 중엽부터 도곡공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선생의 호를 따서 도곡재로 하였다고 한다. 

도곡재는 원래 앞면 4칸, 옆면 1칸의 규모의 사랑채였으나 후대에 재실로 사용하면서 왼쪽에 퇴칸 1칸을 달아 내고 대청을 넓혀 누처럼 꾸몄다. 안채,사랑채,대문채 등이 3개의 권역으로 분리되어있다. (조선 시대 남부지방 양반 가옥의 모습)

도곡재는 현재 유형문화재 제 32호 이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육신사가 있습니다. 육신사로 가는길과 육각정으로 가는 길 두갈래이다.

참고로 두 갈래 안내판 앞에 화장실이 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육각정이 나온다. 그리고 #육각정 으로 가면 삼가헌으로 가는 도보길도 나온다. 거리는 적혀있지 않아서 얼마만큼 가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 


#육신사

삼촌에게 왕권을 빼앗긴 어린왕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 숨진 사육신으로 일컫는 조선 세조 때의 박평년,성상문,이개,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처음에는 박팽년의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다가 여섯 어른이 꿈속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에 나머지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 뒤에 하빈사를 지어서 제사를 지내다가 1694년(숙정 20년) 낙빈 이란 현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원철폐령으로 낙빈사가 서원과 함께 철거되었다가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 다시 위패를 봉안하게되었다고 합니다. 충효위인 유적정화사업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육신사로 이름을 붙여 사당을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두군데로 가는 길이 있다. 오른편 건물은 숭절당이다. 

홍살문을 지나치면 오른편에는 태고정 왼편에는 숭정사가 있다. 


#숭절당 

이곳은 제사를 위한 제구들을 보관하는 전사청과 제사준비를 위한 사람들이 머무는 용도로 지어졌다고 한다.

정면5칸, 측면1.5칸, -형 건물, 흩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온돌방, 2칸 대청, 2통문 온돌방, 부엌이 있으며, 부엌 상단에는 다락을 두어 제구를 보관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학생들의 체험학습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오늘 같은경우에는 이곳에서 체험학습이 진행되었다. 

 


#숭정사

사육신, 박평년의 아버지 박중림을 모신 사당이다. 

입구에는 사육신 육각비를 비롯하여 박정희, 최규하 대통령, 박준규국회 의장 기념 비석, 제13,14,15,대 국회 의장 박준규 생가 터 표석이 있습니다.

정면 5칸,측면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태고정

태고정은 육신사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태고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이 조홥된 기와집이다. 대고정의 안채는 정면4칸, 측면3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ㄱ 자형으로 부엌과 방 대청 2칸에 방 1칸이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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