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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도주관

살아가는 이야기/여행하기

by 꿈을 낚는사람 2023. 1. 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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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도주관

조선시대의 청도군 관아 건물입니다.  "도주관" 이라는 현판이 걸렸으며, 조선 현종 때 지어졌습니다. 

정청과 우익헌만 남아있는데, 최근에 좌익헌을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청도의 진산인 오산(鰲山)의 소구릉 등성이에 옛 동헌의 자취가 남아 있고, 그 우측 밑으로 객사가 서향으로 자리하였는데, 현 도주관은 정당과 우익사만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평삼문과 정당은 일축선상에 놓여 있고, 평삼문 우측에 5칸 곳간이 우익사와 대향하여 서 있다. 마당의 우측 담장쪽에 역대 군수들의 선정비(善政碑)가 옮겨져 있고, 우익사 뒤쪽에 일각대문을 내었다. 좌익사와 그 앞에 있던 관리사는 한일합방 후 철거되었다.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막돌덤벙주초 위에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운 외 1출목의 약화된 주심포계열집으로 상부가구는 5량가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우익사는 정면 6칸 측면 3칸인데, 구조수법은 정당과 같으며 지붕선이 겹쳐지는 부분에는 맞배지붕을, 익사 단부는 팔작지붕으로 꾸민 겹처마 집이다. 좌측 3칸은 툇마루 1칸 뒤쪽에 분합문으로 칸막이를 한 3칸 온돌방을 두었고, 우측 3칸은 전후와 우측이 개방된 마루를 꾸미고, 상부 가구를 견실하게 짜 올려 깊은 공간감을 배려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조선 중기 객사 건물의 평면 기능과 입면적 특징의 일단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주관(道州館))]

척화비

도주관 입구에는 척화비가 있습니다. 조선 고종 때 대원군이 양인을 배척하기 위해 세운 비 입니다. 

도주관 역할

도주는 청도의 다른 이름입니다. 관아 중심 건물이었던 객사이며, 정청은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양쪽에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된 동.서익헌을 두고 있습니다. 동익헌은 앞면 6칸 규모입니다. 석익헌 앞면 6칸 규모이며, 일제강정기 이후 없어진 것을 현재 복원 했습니다. 양쪽 색상이 달라보여서 보시면 아시게됩니다. 

과거의 청도

청도군은 대구 남쪽, 경주 서쪽에 위치한 조선시대 지방행정구역입니다. 종4품 군수가 고을 수령으로 있습니다. 

고려가 건국했을때 주변을 통합하여 현재의 청도가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려초에는 현급인 감무가 설치되었다가 고려 28대왕 충해왕때 청도군으로 승격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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