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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 [나정]

살아가는 이야기/여행하기

by 꿈을 낚는사람 2023. 3. 1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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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나정

 

『삼국사기』에 따르면 나정(蘿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강처(誕降處)로 기록되어 있다. 그 기사의 대략을 살펴보면, “어느 날 진한 6촌(六村)의 하나인 고허촌(高虛村)의 촌장 소벌공(蘇伐公)이 양산 밑 나정 우물 옆에 있는 숲 사이를 바라보니 하늘로부터 이상한 빛이 드리웠고, 그 빛 속에 흰 말 한마리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그 알을 이상히 여겨 깨어보니…이에 6촌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이 이상하였던 까닭에 그를 높이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다."라고 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주나정 [Najeong Well, Gyeongju, 慶州蘿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나정은 삼국시대 박혁거세의 탄생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곳에는 #박혁거세 를 기리는 유허비,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등이 발굴된 현장 입니다. 오릉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면 소나무숲이 소복히 있는 가운데 조그만 비각이 있고 그옆에는 우물이 나정이다. 이라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 우물터에서 태어 났다고 합니다. 

 

진한의 여섯 촌과 촌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알천 양산촌 - 이씨 - 시조 알평공

2. 고허촌 -최씨 - 시조 소벌도리공

3. 무산 대수촌 - 손씨 - 시조 구례마공

4. 취산 진지촌 - 정씨 - 시조 지백호공

5. 금산 가리촌 - 배씨 - 시조 지타공

6. 고아촌 - 설씨 - 시조 호진공 

 

기원전 57년에 6부 촌장들이 그를 임금으로 뽑았으며 나라를 서라벌이라고 했습니다. 1975년 11월 20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02년 부터 2005년 4차례 발굴을 하면서 초석 하부에 우물이 있는걸로 여겼지만, 발굴을 시작한 후 다른자리가 우물 터라고 판단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을 문무왕때 이 자리에 신궁을 새로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시작하고 보니, 조사단조차 미처 예상치 못한 팔각형 건물터를 발견하였다.
조사 결과 한 변이 8 m, 지름이 20 m 정도 되는 8각 목조건물을 세웠던 흔적인 초석 50여 개와 둥근 돌기단의 흔적이 나왔던 것이다. 출토된 '의봉 4년(679)'이란 명문이 씐 기와를 통해 신라의 유적임도 확인하였다. 8각형 건물은 지금까지 삼국시대 건축물 가운데  고구려의 탑 형식으로만 알려졌지만, 신라에서도 팔각 건물터가 발견된 것이다. 또한 앞서 말한대로 이 건물은 사각형 담장으로 둘러싸여 천단의 성격도 있었다고 추정한다. 기와 역시 품질로 미루어보면 고급건물이었다. 이로써 나정에 신궁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절충설에 힘이 붙었다. 
 [나무위키 - 나정 ]
발굴 초기 중앙의 수혈유구는 나정이라는 유적명에 의해 우물지 관련 시설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내부 구조가 일반 우물터와는 달라 혼란을 야기하며 본 유적에 대한 나정이란 명칭과 그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근래 부여 군수리사지 목탑지 심초석에서 유사한 구조를 가진 유구가 조사된 바 있어, 이를 참고로 본 수혈유구는 기둥을 세우기 위한 시설로 최종 파악되었다.
구상유구와 원형의 목책열 등의 축조 상한은 초기철기시대부터이며, 수혈유구를 둘러싸고 7세기대 직경 30㎝ 내외의 자연석을 초석으로 사용한 건물지가 들어섰다가, 통일 직후인 7세기 후반경 문무왕의 대대적인 왕성 중창시 한변 길이 8m에 이르는 팔각건물지가 함께 조영된 것으로 발굴단은 보고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주나정 [Najeong Well, Gyeongju, 慶州蘿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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