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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여행 [사촌마을]

살아가는 이야기/여행하기

by 꿈을 낚는사람 2022. 10. 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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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마을은 1392년 김자첨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합니다. 그 이후에 1750년에 병촌류태춘이 마을로 이주하였습니다. 그이후로 안동김씨와 풍산 류씨 등의 세거한 반촌 마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896년에 의병을 주도한 마을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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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창의 기적비

구한말 일제에 항거한 의성지역의 의병활동을 기록한 기념비로서 의병대장 김상종 격문을 원문과 번역문이라고 한다.

안내판의 내용을 보면 2009년 4월 24일에 이곳에 건립되었고, 의성의병은 1896년 4월 2일 구성산에서 첫 전투를 치렀다. 그뒤로에도 황산전투,감은리전투,산운천변전투에서 패전과 승전을 거듭하며 항전을 이어가던 의성의병은 5월 26일에 해산하였다. 62일 간의 장엄하고 힘겨운 전투에서 여러 명이 순국하였으며, 사촌마을이 불타는 고초를 겪었다. 


안동 김씨종택

1584년경에 건립되었다(김씨 종택 바로 옆에 있는 만취당과 같은 시기), 1959년에 증건하고 2005년에 현재의 모습을 하고있다. 현재는 안채,사랑채,대문채로 구성되어있다. 서애 류성룡도 외가인 이곳 사촌리 안동 김씨 종택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건물은 ㅁ자형 건물인 정침이 자리를 잡고 있다. L자형의 사랑채와 ㄱ자형의 안채 이루고 있었으나 2005년에 ㅁ자형으로 이루었다고 한다. (우익사 부분을 연결시켜 정면 6칸,측면 6칸 규모)

안쪽에 일하시는 분이 계셔서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만취당

누각형 가옥이며, 퇴계 이황의 제자 만취당 김사원이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건물이라고 한다. 1584년에 완공하였고, 건립 이후 김씨 종가의 재청 겸 문중 집회소로 사용하였다. 1727년에 거실로 사용하기 위해서 복재를 중축하였다고한다. 그리고 1764년 서소익실을 중축하였다. 규모는 현재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이다. 만취당 현판은 한석봉이 이 썻다고 한다. 대청은 팔작지붕이고 좌우 익사는 맞배지붕이다. 거실 사용을 위해서 1727년에 복재 1칸을 중축하였다. 그리고 1764년에는 서소익실 2칸을 증축하여서 현재의 T자형의 평면을 이루게 되었다. 


만녕송

만취당 바로 위치한 만년송이다. 향나무는 상나무 또는 노송나무로 부르기도 하다.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높이는 8m, 줄기의 폭은 25m 정도이다. 향나무는 연산 재위때 송은 김광수가 심은 것으로 만년동안 푸르게 살라는 의미를 붙여 만년송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자계정

자계 류도희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지은 건물(1920년)이라고 합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툇마루와 난간있다.)이며 풍산 류씨 정자이다. 병촌 류태춘의 증손자이다. 


병촌고택

이곳은 병촌 류태춘의 고택입니다. 현재는 의성서당이라는 간판이 보인다.(류씨종택)

 


지당

연꽃이 인상적인 지당이다. 풍수지리학적으로 화 많은 곳이라 그걸 누르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민산정

민산 류도수를 기리고자 류시억 등 그의 후손들이 2005년에 세운 정자이다. 만신정은 정면4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의 전형적인 정자로 툇마루를 설치하고 전면의 일부를 난간으로 둘렀다. 이곳은 가족단위 한옥체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10개의 객실과 1개의 강당으로 이루어졌다. 


사촌마을자료전시관

이곳에는 사촌마을 전적, 문집과 저서, 우강 김호직의 동천자와 한양가, 사촌마을의 유래와 민속에 대한 이야기등의 자료가보관된곳 이다. 


자여당

자여당은 전통가옥이며, 사촌마을자료전시관 건너편에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1칸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온돌방 1칸씩 두었다. 


후산정사

김사원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1747년 재사를 세우고 1749년 묘우가 완성된 후에 후산정사로 칭하였다. 모든 서원들이 그렇겠지만 서원 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991년에 강당과 대문을 중건하였고 울타리를 새롭게 단장하였다.그리고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 이다.  3곳으로 구분되는데, 오른쪽에는 후산사 사당이 있고, 왼쪽에는 전사청과 관리동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인다. 

 


풍산류씨 초해고택

현재는 한옥스테이로 이용되는 것 같다. 초해 고택은 100년 전 새로이 지어진 근대식 한옥으로 100% 춘양목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1915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양진당

만취당 김사원의 손자 김상린이 1659년에 건축하여 수양하며 지낸 곳이라고 한다. 두칸의 방과 마루로 지어진 작은 건물이다. 비석은 고려도원수충렬공선조 능동묘위 전의치표석 이라고 적혀있다. 이곳도 6.25 전쟁때 소실하였다. 1952년 팔작기와집으로 증건, 1993년 중수하였다고 한다. 2007년 온돌방 1칸을 증축하였고, 이때 사주문과 담장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류한식 가옥

1935년에 건립된 근대 한옥이다. 현재는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잠겨있다. 안채,사랑채,고방채,대문채로 되어 있고, ㅁ자형이다. 그리고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이다. 


후송재

김사정의 호이며, 임진왜란 후 강학하던 곳이다. 후손들은 선조의 얼을 새기며 강학의 장소로 이용해 왔다. 규모는 6칸이었고, 대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896년 병신의병때 소실되어 중건되었다가 1950년 6.25전쟁때 소실되어다가 1988년 사랑채를 중건하여 현판을 걸고 사용하다가 1993년에 종친들의 성금으로 후송재 종택 동쪽에 이건 하였다. 

정면 4칸, 측면 1칸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경암서당

현재 보수공사이다.(2022.10) 


 

김면호 가옥

 


김진가옥

ㄱ자형의 사랑채와 안채가 튼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현채는 사랑채가 소멸되고 사랑채 좌측에 있던 고방 부분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한다. 


김성수가옥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한 김양범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원래는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에 있던 것을 1986년 현재사촌리로 이건했다고 한다. 


류기식 가옥

안채와 아래채로 이루어져 있다. 


류인성 가옥

사랑채와 문간채, 안채로 구성된 가옥이다. 


사촌마을 가로숲은 산촌마을 건너편에 있다. 천연기년물 405호이다. 가로숲 길이가 920m, 폭이 90m 정도이다. 나이가 300~600년 가량되는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500여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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